탄소가 아닌 생명체 (실리콘, 타이탄, 메탄 생명)
저는 오랫동안 생명이란 따뜻한 피가 흐르고, 산소를 마시며, DNA로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존재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탄소가 생명의 중심이 된 이유를 파고들면서, 이 모든 것이 지구라는 특정 환경에 맞춰진 정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주 어딘가에는 영하 180도 메탄 바다를 헤엄치거나, 규산염 유리처럼 단단한 몸으로 화산 지대를 느릿하게 이동하는 생명체가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탄소가 생명의 중심이 된 세 가지 이유
피부터 머리카락, DNA까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의 핵심은 탄소입니다. 우주에는 92가지 자연 원소가 존재하지만, 유독 탄소가 생명의 골격이 된 데에는 명확한 화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탄소 원자는 네 개의 결합 팔을 가지고 있어서, 동시에 네 개의 다른 원자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특성 덕분에 고리, 사슬, 그물망 같은 복잡한 구조를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죠. 저는 이 부분을 처음 이해했을 때, 레고 블록처럼 단순한 원리가 무한한 조합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탄소 결합이 튼튼하면서도 유연하다는 점입니다. 생명체 내부에서는 매 순간 수백만 개의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분자가 분해되고 재조립됩니다. 탄소는 이런 과정을 견딜 만큼 안정적이면서도, 필요할 때는 쉽게 끊고 다시 붙일 수 있는 절묘한 균형을 갖췄습니다. 세 번째는 물과의 궁합입니다. 지구 생명체 대부분이 물을 용매로 사용하는데, 탄소는 수소, 산소, 질소와 결합해 당분, 아미노산, 핵산 같은 생명 필수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이 물질들은 물속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능하죠.
여기에 더해 탄소는 우주에서 수소, 헬륨 다음으로 흔한 원소입니다. 별의 핵융합 과정에서 대량으로 생성되어 우주 공간에 퍼졌기 때문에, 재료 수급 측면에서도 생명의 기반으로 최적이었던 겁니다. 솔직히 이 조합은 거의 우주적 행운처럼 느껴질 정도로 완벽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은 지구라는 특정 조건 아래에서만 절대적입니다.
실리콘 생명체의 가능성과 한계
주기율표 14족에서 탄소 바로 아래 자리한 실리콘은 탄소와 놀라울 만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리콘 역시 네 개의 결합 팔을 가지고 있어서, 이론적으로는 탄소처럼 복잡한 분자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느낀 점은 실리콘이 고온 환경에서 탄소보다 훨씬 안정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표면 온도가 수백 도에 달하고 황화물이 풍부한 극한 행성이라면, 실리콘이 생명의 중심 원소로 기능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실리콘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실리콘-실리콘 결합은 탄소-탄소 결합보다 불안정하고, 더 큰 문제는 산소와 만났을 때입니다. 실리콘이 산소와 결합하면 이산화규소, 즉 모래나 수정 같은 물질이 되는데, 이건 한 번 형성되면 분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생명체가 대사 활동을 하려면 물질을 끊임없이 분해하고 재조립해야 하는데, 실리콘은 이 과정에서 막다른 길에 부딪힙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일회용 접착제처럼 한 번 붙으면 끝인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이 달라지면 이야기는 완전히 바뀝니다. 물이 아닌 액체 암모니아나 메탄이 용매로 작용하고, 산소 대신 황이나 메탄이 풍부한 환경이라면 실리콘은 오히려 유리할 수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같은 과학자는 실리콘이 고온 생명체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SF 작품에서는 화산 지대에서 증기 반응으로 에너지를 얻으며 결정을 복제하듯 천천히 번식하는 실리콘 생명체를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존재는 우리가 보기엔 광물과 생물의 경계가 모호한 형태로 보일 겁니다.
타이탄의 메탄 바다와 새로운 생명 가능성
토성의 위성 타이탄은 태양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천체 중 하나입니다. 표면 온도가 영하 179도에 달하지만, 이곳에는 비가 내리고 강이 흐르며 바다가 존재합니다. 단, 그 바다는 물이 아니라 액체 메탄과 에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생명이 물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물 그 자체가 아니라, 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액체 용매가 존재하느냐는 점입니다.
NASA, CNES, ESA가 공동으로 진행한 카시니-하위헌스 탐사선 프로젝트는 타이탄의 대기에서 수소, 메탄, 에탄, 아세틸렌을 감지했고, 지표에서 수소 농도가 변화하는 패턴을 관측했습니다. 일부 연구진은 이것이 메탄을 대사하는 생명체의 흔적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습니다. 물론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2028년 발사 예정인 드래곤플라이 탐사선이 타이탄의 낮은 중력과 두꺼운 대기를 이용해 헬리콥터처럼 비행하며 표면을 정밀 분석할 예정입니다.
메탄 생명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들은 메탄을 흡수하고 아세틸렌이나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영하 180도 환경에서도 유연한 막을 유지하는 구조를 가졌을 겁니다. 지구 생명체보다 훨씬 느리게 대사하고, 아마도 우리 눈에는 전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제 생각에 이건 단순히 외계 생명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생명을 너무 좁게 정의해온 것은 아닌지 되묻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생명 정의의 패러다임 전환
지금까지 우리는 생명을 탄소 기반, 물 용매, DNA 복제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정의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철저하게 지구 환경에 최적화된 틀입니다. 만약 어떤 존재가 물 대신 액체 질소를 쓰거나, 탄소 대신 비소나 황을 사용하거나, 복제 대신 결정 성장으로 존재를 유지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탐지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개념이 그림자 생명권인데, 이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생명 형태가 지구에도 이미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제게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외계 생명 탐사 장비들은 대부분 지구형 생명 조건, 즉 물의 흔적, 메탄이나 산소 대기, 생체 분자 흔적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정보를 저장하고 에너지를 얻으며 구조를 유지하는 방식은 무한히 다양할 수 있습니다. NASA는 최근 'life as we don't know it'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며, 구조의 자기 복제성, 열역학적 불균형 유지, 에너지 흐름 패턴 같은 현상 자체를 감지하는 방식으로 탐사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제 생명을 구성 물질이 아니라 행동 양식과 정보 처리 능력을 기준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로봇, 알고리즘, 심지어 결정 구조체도 특정 조건에서 준 생명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선으로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 관점이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생명이란 특정 재료가 아니라, 정보와 에너지, 구조와 목적 사이에서 벌어지는 존속의 의지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우주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데 우리가 단지 탄소라는 안경만 쓰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바꿔야 하는 것은 망원경이 아니라 관점입니다. 영하 180도 메탄 바다를 헤엄치는 존재든, 규산염 유리처럼 단단한 몸을 가진 존재든, 정보 처리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무언가든, 그들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우주에서 존재하려는 의지를 실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드래곤플라이가 타이탄에 착륙하는 2028년, 우리는 어쩌면 생명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 참고: https://livewiki.com/ko/content/silicon-based-life-forms.png)